성령은사론(박수웅) 비판글1

Description
critic

Please download to get full document.

View again

of 4
All materials on our website are shared by users. If you have any questions about copyright issues, please report us to resolve them. We are always happy to assist you.
Information
Category:

Documents

Publish on:

Views: 0 | Pages: 4

Extension: PDF | Download: 0

Share
Transcript
  성령은사론 ( 박수웅목사 ) 비판글  1. 먼저   이   글을   쓰신   박목사님이란   분은   필자가   전연   알지   못하는   분이며 , 단지   그의   글은   인터넷   상에서   몇개를   접했을   뿐임을   밝힙니다 . 그러나   글을   통해서   박목사님의   의중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 곧   쇠퇴해   가는   한국교회를   보는   안타까워하는   목사님의   마음입니다 . 또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성도가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신령하고   복된   은혜를   누림과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여   진리의   지혜와   지식이   충만한   그런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그런   간절한   바램을   읽을   수   있습니다 .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비판적인   글을   쓰고자   하는   이유는   박목사님의   단순한   논의들   가운데   일부   잘못된   견해와   주장들은   그가   바라시는   한국교회의   회복에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 심지어   위험한   주장들까지   내포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이에   필자는   박목사님의   글을   중심으로   개혁주의의   관점에서   그의   주장들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비판하고자합니다 . 어떤   글에   대한   비판의   목적은   당연히   그   글의   허구를   밝히는   것입니다 . “교회   쇠퇴는   성령   은사   거부하며   인본주의로   간   결과”   글의   제목에서부터   논자가   어떤   입장에   서서   문제를   파악하고   있는지   알   수   있듯이 , 한국교회   문제의   핵심을   성령   은사를   거부한   것으로   보고   있다 . 이러한   논자의   주장은   전체   글에   초지일관   되게   강조되고   있으며 , 그것을   문제의   핵심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그러나   과연   한국교회의   쇠퇴가   성령의   은사를   거부해서   일어난   것인지   생각해   볼   때   필자는   전혀   그런   것과는   다르고   도리어   성령의   은사를   주장하는   것이   쇠퇴의   원인으로   까지   작용한   것이라고   본다 . 그러므로   필자는   논자의   주장이   현실에   대한   바른   이해가   결여   되어   있으며 , 이는   그의   신학적   관점이   크게   왜곡   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 “교회   문을   닫게   하는   이론들”   논자는   소제목에서도   한국교회에   대한   그의   시선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 논자가   여기서   일컫는   ‘이론’은   개혁주의 , 특히   칼빈주의를   가리킨다 . 그의   말대로   하면   결국   칼빈주의가   교회의   문을   닫게   했다는   것이다 . 물론   그는   칼빈주의   전체를   모두   부정하는   것   같지   않다 . 왜냐하면   글의   초두에서   한국   기독교   신학이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적시하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칼빈주의의   어떤   부정적인   측면이   한국교회의   문을   닫게   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는   것인데   필자는   이러한   주장이   과연   팩트인지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 미리   말하자면   논자가   지적하는   한국교회   신학 , 곧   칼빈주의   신학 ( 정통개혁주의   조직신학이라   이해됨 ) 의   문제의   핵심은   은사 ( 예언과   방언 ) 를   부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전체   논지이다 . [ 한국의   기독교   신학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아직까지   정립이   되지   않은   신학이   있다면   성령론이다 .  왜냐하면   성령론에   대한   신학사상이   다양하고 , 성령의   은사를   체험한   자들과   은사를   전혀   체험하지   못한   자들의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 또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   중에도   받는   은사부터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 성령님은   인격적이셔서   각자의   문화와   다양한   생활방식과   가치관에   따라   은사를   받는   사람이   이해하도록   주신다 . 이   때문에   타인에게는   생소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어   이론적으로   단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 정립되지   않은   성령론   때문에   다양한   신학적   이론과   체험적   이론으로   영적   혼란에   빠지기도   하며 , 바른   성령의   은사   사역도   신비주의나   이단으로   매도당하기도   한다 .]   사실   필자가   볼   때   논자의   글은   부드러운   것   같지만   사실   굉장이   도발적이고   파괴적이다 . 왜냐하면   정확한   근거   없이   아무렇게   이렇다   저렇다   주장하기   때문이다 . 특히   한국   기독교   신학 ( 개혁주의   신학 ) 에  ‘ 성령론이   정립되지   않았다 ’ 는   그의   주장은   참으로   황당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 말하자면   개혁신학   전체가   실상은   성령신학의   맥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도   그는   성령론이   없다고   한다 . 그러므로   논자가   말하는   성령론이란   결국   자신의   입장에서   이해되는   신학   관점을   지칭하는   것으로   밖에는   달리   이해되기   어렵다 . 또한   한국교회의   신학이   개혁신학 ( 칼빈주의 ) 로   대표된다   해도   과연   칼빈의   신학과   한국의   칼빈주의가   성령론이   정립되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는   굳이   전문신학   서적으로   뒤지지   않고   그냥   포털   사이트   정도에서   검색해   봐도   충분히   살펴   볼   수   있다 . 결국   이   말은   논자가   개혁신학을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이해하고   있고 , 개혁신학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 정통   개혁주의   신학의   명맥을   계승하고   있는   기라성 ( 綺羅星 ) 같은   신학자들을   보라 . 그들은   한결   같이   성령을   모든   진리의   근원으로   설명한다 . 칼빈과   그의   후대의   명망   있는   개혁   신학자들에게서   성령론을   볼   수   없어서   한국교회에   성령론이   정립되어   있지   않다고   하는가 ? 그의   이런   주장은   너무나   근거   없고   무모하다 . 하지만   그에게   있어   성령론이란   단지   은사의   체험과   나타남에   대한   집착에만   쏠려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 논자는   은사의   나타남 , 즉   체험의   다양성을   들어   개혁신학이   마치   그런   주관적   체험의   다양성을   모두   포괄하고   섭렵하기에   부족하다는   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개진한다 . 물론   은사의   다양성은   성경도   증거한다 . 그러나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성도의   은사가   다양하지만   모든   근원은   성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특별히   제 2 위격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는   것이다 . 이것이   개혁주의   신학이   이해하고   있는   성령   은사론의   교의이다 . 하지만   논자는   은사가   다양해서   그   주관적   체험의   다양성   때문에   개혁주의   신학과   교의 ( 이론적 ) 로는   파악할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 그리고   그런   체험의   다양성으로   성령론이   정립되지   않았다고   단정하고   있으며 , 이로써   개혁신학이   은사에   무지하여   마치   큰   오해와   오류를   양산하고   있다는   듯이   말하고   있다 . 논자는   글의   전체   논지를   통해서   개혁신학의   이러한   은사에   대한   무지가   교회를   쇠퇴하게   만들고   성령을   근심하게   하여   망조가   들게   했다고   보고   있다 . ( 과연   그러한지는   이후에   언급할   것이다 .)    그리스도는   은사의   근원과   능력이며 , 효력이며 , 그에게서   신령한   은사들의   탁월함과   부요함이   흘러   나온다 . 바로   이때   성도는   성령께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 성령의   사역 ) 를   명민 ( 明敏 ) 하고   깊은   식견 ( 識見 ) 을   갖고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 . 성도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인식하게   되고 , 복음의   영광과   탁월함에   감화 (PERSUASIO) 될   때 , 여기에서   성령은   성도   개인의   영혼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은사 (CARISMA) 의   효력을   다양하게   드러내신다 . 이때   성도   개인의   일반적인   성품과   기질을   사용하시나 , 때로는   성도   가운데   특별한   은사 ( 예언 , 통역 , 방언을   의미하지   않음 ) 를   부여하셔서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   드러나게도   하신다 .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의   다양함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도   안에서   그에게   주어진다 . 개혁주의는   이와   같이   제 2 위격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령의   인격과   사역을   담지하고   이해한다 . 성령의   은사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   되어야   한다 . 그러할   때에라야   비로서   은사의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질서   있고   조화로운   은사의   덕성 (VIRTUS) 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개혁신학의   근본   원리의   두   축은   말씀과   성령이다 . 성령   은사론의   자리는   이   안에서   온전하게   세워질   수   있다 . 필자가   볼   때   논자는   이러한   개혁신학의   근본적인   성경이해와   원리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하거나   적어도   그런   신학적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 말씀이   있는   곳에   성령도   함께   하며 , 성령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벗어나   역사하지   않으신다 . 성령은   창조시부터   구속의   완성 ( 새   창조 ) 후에도   지금부터   영원히   말씀과   분리   되지   않으신다 . 아버지 ( 성부 ) 와   아들 ( 성자 ) 가   하나이듯   성령도   한   본질이시며 , 삼위일체께서   내재적으로   한   본질을   공유하시고   그렇게   영원히   지금   계신다 .   ( 요  16:13-15)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정리하자면 , 성도   개인에게서   은사의   효력과   비상 ( 非常 ) 한   능력이   드러난다고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은   그리스도에게서   말미암는   것이며 , 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그래서   필히   기록된   말씀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며 , 그래서   영적인   분별이   항상   말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 또한   성령은   성경의   기록된   말씀을   벗어나   일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깊이   주지 ( 主旨 ) 해야   한다 . 왜냐하면   삼위이신   성령께서   친히   성경  66 권   전체   말씀에   영감을   불어넣으시고 , 진리로   작성하셨으니 , 기록된   말씀을   벗어나   역사하지는   않으신다 .   ( 사  34: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이것은   성령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도   지상의   공생애를   통해서   모든   초점을   기록된   말씀을   성취하고자   하는데   맞추셨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 마 1:22, 2:15,23, 4:14, 8:17, 12:21, 13:35, 21:4, 26:56,  막 14:49, 요 12:38, 13:18, 15:25, 17:12, 18:9,32, 19:24,28,36, 행 13:27,29).   하물며   성령의   은사의   나타남이   어찌   주관적   체험의   다양성을   빌미삼아   성경의   교의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   개혁주의가   성령론이   없고 , 은사의   다양한   체험으로   인해서   신학적인   이론이   정립되지   않았다는   논자의   주장은   사실   반박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   황당한   주장에   불과하다 .
Similar documents
We Need Your Support
Thank you for visiting our website and your interest in our free products and services. We are nonprofit website to share and download documents. To the running of this website, we need your help to support us.

Thanks to everyone for your continued support.

No, Thanks